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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66호] 넘치는 분노, 우리사회의 그림자

넘치는 분노, 우리사회의 그림자

편집장 장 혜 연

[출처: Pixabay]

 

2023년. 대한민국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행해지는 무차별적 범죄행 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수행하는 선진국 모임인 G7에 초청받을 정도로 성장한 한국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향해 행해질지 모르는 테러 행위로 고통받고 있다. 2018~2020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이 매일 경쟁하는 사회인의 절망을 증명한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10만 명당 14.6명으로 8위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10만 명당 24.1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2위는 리투아니아로 인구 10만 명당 20.3명 수준으로 압도적 격차로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거머쥐었다(차유채, 윤선정, 2023).

문제는 비단 높은 자살률 뿐만이 아니다. 가임기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평균 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진 것이 2018년. 2022년 기준 0.78명 수준이 다(통계청, 2022). 결혼과 임신을 거쳐 아이를 낳더라도 육아휴직 사용 후 회사에 돌아왔을 때 ‘방 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사회(신현욱, 2023). 기껏 남아있는 사람들과도 마음껏 어울리지 못하고 성별, 지위, 세대 따위를 이유로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한 긴장감만이 맴도는 사회. 경찰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발생한 범죄 124만 7천680건 중 23만 8천243건(19.1%)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범죄에 해당하며, 이는 경찰이 파악한 범행 동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한국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분열이 진행 되었고 상처의 고름이 피부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일본의 모습은 우리의 초상?

 

2000년대 초반의 일본에서는 특정한 목적이나 사전 계획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분노, 감정에 의해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행하는 분노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 언론도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사회의 불안정과 젊은 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서의 분노 범죄를 보도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분노 범죄의 연속으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의 스트레스, 사회적 격차, 가족 내 문제 등 여러 원인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 졌다.

일본은 새로운 형태의 테러 행위를 우리보다 먼저 마주했다. 일본 에서는 무차별 살상을 ‘길거리 악마’라는 의미의 ‘도리마(通り魔)’ 살인이라 부르며, 지난 20년간 ‘도리마’ 살인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일본 정부는 도리마 문제의 핵심이 개인의 사회적 고립감에 있음을 지목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연구와 분석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앞선 시기에 일본에서 일 어난 사건을 살펴보자.

 

사건번호 1. 2001년 6월 8일 당시 38세 타쿠마 마모루가 이케다시의 오사카교육대학 부설 이케다 초등학교에 흉기를 든 괴한이 침입 하여 초등학생 8명 사망, 15명이 부상당한 사건. 2004년 9월 14일을 기해 오사카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건번호 2. 2008년 6월 8일 당시 25세 카토 토모히로는 “승자는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2톤 트럭으로 횡단보도에 돌진해 사람들을 친 뒤 가지고 있던 서바이벌 나이프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마구 찔러 7명 사망, 10명 중경상을 입혔다. 범인 카토 토모히로는 체포된 후 사형선고를 받고 14년간 복역하다 2022년 7월 사형을 집행 받았다.

사건번호 3. 2016년 7월 26일 당시 26세였던 우에마츠 사토시가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위치한 장애인시설에 침입하여 19명을 살해하고, 27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 피해자가 제대로 거동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 경악과 분노를 일으켰다.

사건번호 4. 2021년 10월 31일 당시 24세였던 핫토리 쿄타가 쵸후시를 주행 및 후다역을 통과 중이던 열차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방화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부상자 중 72 세 남성 피해자 1명은 중태에 빠졌다. 2023년 7월 21일 도쿄지검은 1심 에서 핫토리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했으며, 31일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한동안 일본에서는 전동차 안 모방범죄가 잇따랐다.

위 사건의 공통점은 범행 당시 20~39세의 청년층의 나이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또 대상자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일어났으며 그중에서는 어린이, 지체장애인과 같이 저항할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일본 법무성(2013)이 진행한 ‘무차별 살상사법에 관한 연구’에서는 범행 동기를 ‘처지에 대한 불만’, ‘특정인에 대한 불만’, ‘자살 및 사형에 대한 소망’, ‘감옥으로의 도피’, ‘살인에 대한 관심’ 등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경제적 빈곤이나 사회적 관계가 범죄를 촉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을 겪으며 경제적 불안정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중하게 되었다. 동시에 전통적으로 유지하고 있던 가족구조 혹은 지역사회 변화로 인해 개인 간 사회적 연결망이 약화되어 외로움 과 고립감,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또한 내면 화와 자제, 타인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일본 문화의 특수성이 부정적 감정을 개인화하고 내면에 담아두어 압박감이 더더욱 커졌다는 해석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건이 교육과 제도,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신림역 흉기난동사건, 한국형 분노범죄의 방아쇠를 당기다

 

일본에서 새로운 형태의 무차별 살인이 발생한 지 약 2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정해진 수순인 것처럼 이상 동기 범죄에 마주한다. 2023년 7월 21일 오후 2시 신림역 4번 출구 근처 골목 및 지상 주차장 에서 33세 조선이 칼부림을 일으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체포 당시의 영상에서 “열심히 살라했는데 안 되더라고. X같아서 죽였 습니다.”라며 자신의 범죄행위가 불평등한 사회구조 탓에 일어난 일이 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신림동 사건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2023년 8월 3일 17시 55분경 분당구 서현동의 AK플라자에 서 22세 최원종이 차량을 타고 인도를 향해 돌진했다. 인도에서 사상 자를 낸 뒤 차량에서 내려 무차별적 칼부림을 하던 범인은 2명을 살해 하고 1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신림역 사건으로부터 시간적 거리가 멀 지않아 시민들은 모방범죄를 의심했지만, 분당 흉기난동사건의 피의 자 최원종은 신림역 흉기난동사건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며 모방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 살인 및 흉기 난동 예고 글이 등장하였고 8월 4일에 익명의 텔레그램 유저가 수인분당선 오리역에서 사람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게시하였다. 당시는 서현역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게시글을 접한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며칠 전 일어난 출근길 지 하철 흉기 난동 오인 사건만 봐도 시민들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경찰청은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25일까지 전국에서 ‘흉악범죄 예고 글’ 작성 혐의로 228명을 검거하고 이 중 22명을 구속 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칼부림 등 범행이 예고된 곳을 알려주는 웹 사이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상 동기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나 오고 있는 와중에 경찰은 올해 벌어진 무차별적 살인, 상해 등의 소위 ‘묻지마 범죄’ 유형을 ‘이상 동기 범죄’라고 명명, 분류하였다. 분류 대상이 된 18건의 사건 피의자 대부분은 전과가 누적되며 폭력성이 반복 노출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발달, 발전, 경쟁, 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 누군가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하지만 동아일보와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가 성인남녀 1,9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답한 사람은 55%에 불과했다. 특히 10 대(28.8%)와 20대(29.4%)는 한국인인것이 싫다고 응답했고, 한국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는 ‘경쟁적이다’라는 답변이 36.5%로 가장 많이 공감 받았다. 1인당 커피 소비량 367잔으로 프랑스에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소비량을 자랑하는 한국. 이는 세계 평균인 161잔의 배 이상이다. 한국 성인의 70%가 적어도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나라. 수치가 응답해 주는 한국 사회의 피로 이제는 찢겨지고 벌어진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 봉합해야 할 시기이다.

영국에서는 2018년 1월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설립 했다. 이 부처는 우울증, 고독, 분노와 같은 마음의 질병을 오롯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하겠 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2021년 고독 문제를 담당할 장관직을 만들고 민간기관과 함께 상담 창구를 마련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정서가 유사한 일본에서 도리마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고립감을 지목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고립감 또는 외로움 과 같은 정서는 단지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오롯이 개인이 혼자서 참아내야 할 마음의 병이 아닌, 지역사회 혹은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장하여 모두 다 함께 해결해야 할 주요 의제로의 확장과 인식개선을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