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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67호] 문화 예술이 된 게임

송효정 기자

 

게임이란 무엇일까?

  196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루딕(ludic)"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 용되면서 ‘놀이적임’은 현대 및 포스트모던 문화의 주류 특징이 되 었다. 이 맥락에서 떠오르는 것 중 가장 두드러진 예시는 컴퓨터 게임의 엄청난 인기일 것이다. 컴퓨터 게임의 글로벌 판매량은 할리우드 영화의 관객 수를 오래전에 앞질렀다. 미국에서는 8~18세 청소년이 매일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평균 1시간 30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한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2가 게임을 즐기며, 게임은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이자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흔히 게임을 스크린 속의 ‘놀이’ 정도로 취급한다. 그러나 게임의 범위는 우리 생각보다 넓다. 헤라클레이토스나 프리드리히 실러 같은 철학자는 게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삶과 세계를 게임의 한 형태로 해석하기도 했다. 게임은 스크린 속에만 있는게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도 녹아들어 있다. 혼잡한 도로에서 차선을 변경할 타이밍을 보는 것, 크림(Kream)에서 맘에 드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적절한 가격으로 입찰하는 것, 회사에서 연봉 협상을 하는 것 모두 사람 사이에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게임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게임은 단순한 오락뿐만 아니라 창의성, 전략, 협력, 경쟁 등 다양한 측면에서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매체로 정의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게임이 디지털의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더 다양한 형태와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놀이에서 벗어나 문화 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예술이 된 게임

  게임은 그래픽, 음악,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가 게임 안에서 조화롭게 결합하여 플레이어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To the Moon’이나 ‘The Last of Us’와 같은 게임은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적 요소와 감동적인 이야기로 게임이 단순한 오락뿐만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형성시켰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일반적인 상업 게임과 대비되는 여러 장르도 탄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영화 장르 중 하나인 ‘시적 영화 poetic film’에서 영감을 받은 ‘시적 게임 poetic game’이다. 시적 영화는 “시와 같은 느낌을 전달하는 영화”로 정의되는데, 마야 데랜이 말한 것처럼 내러티브가 배제된 전위 영화(avant-garde cinema)를 뜻한다. 시적 게임은 시적 영화의 특성을 따라가며 ‘순간’의 의미에 주목 하며 ‘감각의 전달’, ‘적극적인 해석’, ‘표현의 절제’를 추구한다.

  특히 ‘시적 게임 poetic game’의 대표작인 'Journey(이하 저니)' 는 게임 안에서 예술을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저니에서는 특정한 세계관이나 이야기 구조를 갖지 않으며, 필드 위에 몬스터도 없고 공주를 구하기 위한 임무도 없다. 그리고 게임 내에 글자가 존재 하지도 않고 규칙이나 가이드가 특정한 플레이를 유도하지도 않는다. 제목처럼 플레이어는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에서 여행하며 작은 빛을 보고 어렴풋이 목적지를 추측할 뿐이다. 저니에서 플레이어는 세부 목표들에 힘들이지 않고 막연하게 게임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진행되어 있다. 이 밖에도 저니가 보여주는 시적 특징이 있다. 게임은 서술적 장치를 최소화하는 대신 게이머의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들을 넣었다. 저니가 힐링 게임으로 불리는 이유일 텐데 그래픽과 사운드가 서정적으로 표현된다. 또한 플레이하다 보면 온라 인상의 다른 플레이어를 만날 수 있는데 별다른 소통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서로 대략적인 느낌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이렇게 동료와 함께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상대방을 기다려 주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를 기다려 주기도 하는데 게임 속에서의 미묘한 플레이 경험은 시적 게임이 추구하려는 표현의 절제와 감각의 전달, 그리고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해석을 강조한다.

  우리는 저니의 사례에서처럼 게임의 문화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듯 지난 2022년 9월 게임을 문화예술 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화예술진흥법(문화예술법) 일부개정법률안' 이 국회를 통과했다. 관련 법이 개정된 지 약 50년 만에 게임이 대중문화예술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지원이나 육성보다는 규제 대상이었다. 일찍이 미국, 일본, 프랑스에서는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고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투자해 콘텐츠 산업을 키운 것과는 대조되게 한국에서는 유난히 게임이 문화예술로 인정받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이번 개정안으로 문화예술사업 및 활동으로서 게임이 지원과 육성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시대의 변화와 대중의 관심에 따라 게임에 대한 인식과 위상은 과거와 달라졌다. 특히 이번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으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로써의 게임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 대다수 사람은 게임을 예술과 문화의 한 영역으로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게임은 우리가 흔히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영상, 미술, 음악, 스토리가 담겨있다. 즉, 게임은 종합문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살려 게임은 다른 예술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보보보 사건’ 이후로 게임을 떠났던 ‘메난민’들이 정착한 것으로 주목을 받았던 ‘로스트 아크’가 예술과 성공적으로 조화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2022년 6월 스마일게이트는 자사 게임 ‘로스트아크’의 OST를 활용 한 콘서트 '디어 프렌즈(Dear. Friends)'를 개최했다. 이 콘서트에는 KBS 교향악단과 구리 시립 합창단, 천안 시립 합창단이 참여해 무대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클래식에 입문하거나 예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KBS교향악단과 관련된 인물들이 관심을 얻게 되었다. 콘서트를 이끈 안두현 지휘자의 이야기를 비롯한 공연 비하인드도 공개 되면서 게임이 새로운 문화 경험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 다. 그뿐만 아니라 스마일게이트 희망스튜디오를 통해 콘서트의 수익금으로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음악 예술교육을 지원하는 캠페인도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게임이 문화예술산업 형성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로스트아크 공식 유튜브

 

게임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있다

  게임은 더 이상 컴퓨터 화면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사람들 간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임은 MZ세대의 소통 플랫폼이자 코로나 세대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하고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면서 특히 중고등학생들 이 장기간에 걸쳐 사람과의 교류를 할 기회가 없었다. 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교류 부재를 채워주는 새로운 소통 수단을 찾 게 되었는데, 여기서 게임이 예기치 못한 역할을 하였다. 코로나 세대는 게임을 소통의 창구로 사용하며 게임 내에서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였다.

  게임은 현실 세계와 연결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 ‘제페토’는 콘텐츠 소비자가 곧 콘텐츠 제공자가 될 수 있다. 이용자가 직접 디자인한 아이템이나 공간을 사고팔 수 있고 이렇게 얻은 재화를 현실 세계의 재화로도 바꿀 수 있다. 가상 세계에서의 물질적인 거래를 허용하여 현실 세계에서와 다름없는 사회적 활동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의 탄생으로 이러한 현상은 게임이 새로운 사회적 경제 시스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게임은 더 이상 엔터테인먼트의 범주에 머물러 있지 않다. 게임 기술은 의료 분야에서 수술 훈련에 사용되고, 교육 분야에서는 학습 경험을 향상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또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예술로 인정받은 게임의 과제는 무엇일까. 게임은 단순한 오락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 교육,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제는 법적으로 문화예술로 인정받은 만큼 예술계가 저변 확대와 문화 향유 기회 측면에서 게임과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이상우. (2021), <게임, 게이머, 플레이>, 자음과모음. 

Lammes, Sybille. Et al., (2015), <Playful Identities: The Ludification of digital Media Cultures>, Amsterdam University Press. 

엄현식(2023.10.27). "콘서트 가려고 연차썼어요"…게임사에 퍼지는 게임음악 활용법, <핀포인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