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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66호] 현 시대의 기후 게임체인저

현 시대의 기후 게임체인저

 

박우승 기자

출처 : Pixabay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몸에서 열이 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몸이 체온을 높여서 바이러스를 죽이려는 것이죠. 지구도 똑같이 작용합니다. 지구온난화는 숙주이고, 인류는 바이러스죠. 인류의 도태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우리가 직접 인구를 줄이지 않으면 예상 가능한 결과는 둘 중 하나입니다. 숙주가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바이러스가 숙주를 죽이는 것이죠. 어느 쪽이 되었든 똑같아요.” 영화 <킹스맨>

 

영화 <킹스맨>의 악역 발렌타인은 세계 권력자들에게 지구 복원을 위해서는 인류의 일부가 도태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그들을 설득시킨다. 인류의 일부를 소멸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구와 인류의 관계를 숙주와 바이러스로 비유한 영화의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통해 모두가 자세히 알게 되었듯이, 바이러스에는 각각 백신과 치료제 개념이 존재한다. 백신은 건강한 사람이 항체를 형성하여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개념이며, 치료제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건강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념이다. 현시점에서 지구는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과 같이 건강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 지구의 평균 지표 온도와 해수면 높이는 하루가 다르게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고, IPCC를 비롯한 전문가들과 환경 단체들은 온난화 현상의 심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누차 경고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백신 차원의 방안들보다 현 상태를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치료제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대중들에게 친환경 제품 사용, 친환경 교통수단, 에너지 절약, ESG와 같은 보편적인 방법들은 이미 익숙히 알려져 있다. 해당 방법들은 개개인 및 조직이 온실가스를 조금이나마 줄여 기후변화를 최대한 늦추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겠다는 것이 주요 초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석유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산업혁명이 도래한 이후 인류에게 약 250년간 익숙해진 소비생활이 단번에 바뀌기에는 아직까지 너무나도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 80억 명 이상의 세계 인구 모두의 환경문제 인식 재고와 태도 변화가 엄청난 기후재앙이 갑작스레 찾아오지 않는 이상 단번에 바뀌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공학이라는 치료제

 

환경문제에 대한 개개인의 친환경 행동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인류가 가진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 또한 일종의 환경문제 치료제로써 다방면으로 고려되고 있다. 한마디로 공학 기술을 통해 기후 위기 문제를 헤쳐 나가는 것인데,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공학 기술을 지구공학(Geo-engineering) 혹은 기후공학(Climate engineering)으로 불린다. 지구공학은 구체적으로 지구의 대기, 해양 그리고 육지가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과정에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기후시스템을 조절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는 분야로 현 지구에서 매우 중요한 공학 영 역 중 하나이다. 지구공학의 연구 방법은 크게 지구온난화를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제거하는 방법과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광을 조절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분류된다.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거나 줄이는 기술들에는 실제 나무보다 더 높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인공 나무, 해저 심층수를 표층으로 끌어올려 심층수의 해조류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만드는 기술,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액체화시켜 땅속 혹은 심해에 묻는 기술, 바이오 숯을 활용한 이산화탄소 흡수 기술 등이 있다.

 

현재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기술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는 기술은 인공 나무라고 볼 수 있다. 인공 나무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1999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분리해서 제거할 수 있는지를 조사한 중학교 과학 시간의 개인 과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클레어 랙크너는 아버지인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클라우스 랙크너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랙크너 교수는 집에서 딸과 간단한 실험을 통해 화학물질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료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것이 인공 나무의 시작이었다.

 

인공 나무는 기본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탄소 포집 기술로 설계되어 있다. 대기 중의 공기가 인공 나무를 통과하며 인공 나무 내에 있는 액체흡수제로 인해 이산화탄소를 잃게 되고, 이산화탄소를 잃은 공기는 다시금 청정공기로 변하게 된다는 메커니즘이다. 또한 액체 흡수제에 의해 농축된 형태로 저장된 탄소는 반도체 세정액, 드라이아이스, 메탄올 등으로 활용되는데, 해당 기술은 탄소 포집저장(CSS)과 포집 활용(CCU)의 합성어인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Storage)로 불린다. 인공 나무는 일반적으로 약 10m 높이의 구조물로 실제 나무보다 약 1,000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고 알 려져 있으며, 에너지 소비 또한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정부 또한 2023년도부터 인공 나무 기술에 12억 달러(16천억) 투자 계획을 밝히며 인공 나무들을 루이지애나와 텍사스 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CCUS 없이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주장과 같이, 기후변화를 막는 데 있어 인공 나무와 CCUS는 실로 중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혁신적이고 기발한 지구공학 기술이 꾸준히 개발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으나, 그중 하나는 지구공학이 대중적으로 논의되는 데 있어 공중의 친환경 의도를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개개인의 노력이 들지 않고 오직 돈과 기술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대중적인 인식이 확산될수록 개개인의 친환경 행위 의도가 저하할 수 있으며,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지구공학이라는 기술이 있으니 모두 안심하고 지구를 망가트려도 됩니다!’라고 해석될 수 있는 정보를 대중들에게 굳이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구공학의 변수

 

또한 지구공학에는 여러 부작용 혹은 위험성이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치열한 논쟁의 여지가 있으므로 아직 대중적으로 논의되기에는 다소 부담이 있어 보인다. 특히 현재 여러 환경 단체는 지구공학의 안전성 부분에 대해 큰 반감을 지니고 있어 지구 공학 영역의 기술들이 발표되거나 실험을 진행하려고 할 때마다 종종 큰 마찰들이 일어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냉각제인 CW-7을 살포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설국열차의 배경은 단순히 공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실제 우리 현실에 있는 지구공학의 부작용적인 면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영화의 가상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만약 지구공학 기술을 무리하게 진행하여 지구가 큰 피해를 보게 되었을 때는 설국열차의 배경처럼 인류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CW-7과 같이 지구의 온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기술은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열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실제 지구공학 분야에서는 바닷물을 증발시켜 햇빛을 흡수 혹은 반사하는 인공 구름을 만드는 기술, 우주에 초대형 거울을 설치하여 햇빛을 반사하는 기술, 성 층권 탄산칼슘 살포 기술 등이 태양열을 관리하는 기술들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층권에 탄산칼슘을 배포하여 태양열을 관리하는 방법은 2009년 영국 왕립학회가 여러 지구공학 방안들을 검토한 후, 지구온난화에 대한 억제가 실패하였을 때 일종의 플랜 B’의 강력 후보로 꼽은 방안 중 하나였다.성층권 탄산칼슘 살포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는 하버드의 데이비드 키스 교수 연구진의 스코펙스(SCoPEx)’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키스 교수는 1991년 발생한 화산 폭발에서 스코펙스프로젝트의 핵심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분화에서 발생한 화산재와 화산가스 덩어리가 지표면에서 약 35km가량 높게 치솟았는데, 당시에는 지구 기온이 약 0.5도가량 낮아졌고, 키스 교수는 이를 흥미롭게 생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키스 교수 연구팀은 탄산칼슘 입자를 대형 풍선에 넣어서 날린 후 우주 공간에서 터트려 성층권에 탄산칼슘 입자를 뿌리고, 이로 인해 에어로졸이 태양광을 반사 혹은 흡수하여 지구 기온을 낮추는 실험을 실제로 진행 시키고자 노력하였다.

 

2021, 연구팀은 스웨덴 북쪽에 위치한 우주센터에서 해당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으나 스웨덴 내 환경 단체들과 지역 주민 등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실험 계획을 취소하게 되었다. 인류가 가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온난화를 막는다는 계획은 다소 쉽게 들릴 수 있지만, 바이러스 치료제의 개발 절차를 빗대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 오히려 더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보통 바이러스 치료제의 효능성과 안전성 시험은 전 임상 연구와 여러 임상시험 단계를 거쳐 결정된다. 지구공학 기술을 지구에 도입하는 데 있어 임상실험처럼 대상에게 임상시험과 같은 절차 없이 오직 컴퓨터 시뮬레이션 계산과 실험실, 혹은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만 실험한 후 적용한다는 것은 효과와 안정성이 확실치 않으며, 어떤 부작용과 역효과가 나타날지 모르는 위험이 크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쳐스 대학의 안란 로보크는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중국·인도 등의 지역이 여름 몬순 기간 동안 강수량이 크게 감소하는 역효과를 발견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기후연구가는 지구를 냉각시키는 기술에 부작용이 존재하며 특정 지역에 더 높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이는 한 국가에서 지구 냉각을 시도하였을 때, 해당 영향이 한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전 지구적 규모로 파급된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로보크의 시뮬레이션처럼 어느 한 국가에서 지구냉각기술을 감행했을 때 인도 혹은 중국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면, 인도나 중국 정부에서 즉각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고, 국제적 충돌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이다. 즉 기후 실험으로 인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공학 기술을 위한 국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필수적이며 지구공학에 대한 법규와 국제기구 또한 이른 시일 내에 정교하게 형성하여 일종의 전 지구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공학은 환경위기에 지쳐있는 우리에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만약 지구공학연구가 국제적 컨트롤을 통해 안전하고,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기후변화에 두려움을 떨고 있는 대중들에게 축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희망은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기 위한 것이며, 가장 큰 위험은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기에 모험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명언처럼 지구 멸종이라는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기 위해 지구공학의 모험은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