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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70호] 의도된 믿음, 몰입을 선택할 때

dreaming marionette 2024. 10. 24. 17:00

편집장 송효정

 

  독자는 현실에서라면 믿지 않았을 사건이나 인물들을 허구의 세계에서는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접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즐거움을 찾고 몰입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불신의 유예'에 있다. 불신의 유예는 문학에서 시작되어 영화, 드라마, 최근에는 광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는 쉽게 말하자면 '속아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작물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속아주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해리 포터>를 보면서 실제 영국 어딘가에 호그와트가 존재하거나 마법사들이 우리 주변에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아이언 맨>을 보면서 실제로 토니 스타크가 첨단 기술로 무장한 보디슈트를 입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히어로팀을 조직해 외계 종족들과 싸운다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작품 속 허구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야기에 빠져든다.

 

출처 : Medium, “Your Ability to Suspend Reality Is Scary” (by Riky Bains)

 

 

 

  이 몰입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발성'이다. 불신을 유예시킨다는 것은 허구를 알면서도 믿어주는 속아주기의 과정이다. 독자나 관객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허구성을 묵인하기로 선택한다. 이는 단순히 속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의도적으로 이야기 세계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 '자발성'이 불신의 유예의 핵심이다. 이는 우리가 이야기를 즐기는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문학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으며, 방금 본 SNS의 게시글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든 간에 우리는 잠시 동안 그 이야기를 믿기로 하고 순간적으로 몰입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불신의 유예는 문학, 영화, 예술 등 창작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는 단순히 허구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인 불신의 유예를 통해 독자는 캐릭터의 감정에 공감하고, 낯선 세계에 적응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함께 한다. 그렇다면 문학 작품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나타날까? 책을 읽을 때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가 일시적으로 흐려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자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불신의 유예에 들어가게 된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을 때 독자는 호그와트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날아다니는 빗자루나 움직이는 계단처럼 호그와트의 마법적 요소들을 상상하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몰입의 과정은 '작품적 허용'이라는 익숙한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작품적 허용은 창작자가 작품의 스토리를 위해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거나 과장된 설정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독자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수용하면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사람이 날거나 초능력을 사용할 때 독자는 그것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설정을 받아들이고 영화를 즐긴다. 여기서 사용되는 시각 효과는 불신의 유예를 더욱 강화한다.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영화에서 비현실적인 장면들은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내러티브에 깊이를 더하고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불신의 유예는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감상할 때만 작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작용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 광고와 마케팅, 뉴스, 일상적인 대화, 학습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불신의 유예가 나타난다. 연출된 광고를 볼 때 우리는 이 광고가 연출된 허구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또 어떤 이슈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그 내용을 믿게 되는 것도 불신의 유예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새로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일시적으로 불신을 미뤄두기로 하고 그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은 불신의 유예가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보편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불신의 유예는 우리가 새로운 이야기와 경험을 받아들일 때 필요한 인지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를 넘어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현대 사회에서 불신의 유예는 메타버스, 가상현실, 소셜 미디어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풍부한 경험과 공감을 가능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판적 사고를 어렵게 하는 위험을 가지기도 한다. 최근 딥페이크 기술의 오용으로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몰입과 비판적 사고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언어와 내러티브의 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그 진실성을 판단할 줄 아는 것, 문학작품 속 판타지 세계에 몰입하면서도 현실과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불신의 유예를 얼마나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가 개인의 능력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를 말한다. 화면 속 주인공에게 공감하면서 현실의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고민하고, 인스타그램 속에 연출되는 이미지에 빠져들면서도 그 이면의 현실을 파악하는, 능동적인 태도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참고문헌]

허은희. (2009). 불신의 자발적 중지"와 영화의" 그럴듯함.디지털영상학술지,6(2), 191-213.
김운한, & 조병량. (2008). 애니메이션캐릭터에 대한 불신의 자발적 유예: 탐색적 연구.만화애니메이션 연구, 6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