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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1호] 진화하는 문화적 불평등 본문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원용진
문화적 불평등을 피해간 사회는 많지 않다. 문화적 불평등이 가져올 사회적 우려 탓에 그를 단속하려는 움직임이 많았지만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예를 찾기란 어렵다. 쉽게 해소되지 않음은 이미 구조화된 탓이다. 세월이 바뀌고 사회 구조가 바뀜에도 그 구조화가 영속되는 것은 유연성 마저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불평등 구조를 짜 맞추는 영리함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불가피함이라는 빡빡한 조건 속에서도 그를 해소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문화적 불평등의 생산, 재생산구조, 그리고 구조를 뒷받침해주는 유연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블렌과 부르디외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베블렌(Thorstein Veblen)과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문화적 불평등 논의의 출입문을 지키는 거장이다. 베블렌은 포디즘 자본주의의 태동에서 꿈틀댐의 시기에 걸쳐 주로 활약하였다. 그의 주 저서인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Leisure Class)(1897)은 포디즘의 본격화보다 앞서 출간되었다. 하지만 마치 이후 시대를 예견한 듯이 유한계급의 과시 소비를 파헤쳤다. 부르디외는 문화적 불균질을 집대성한 저서 <구별짓기> (Distinction)를 베블렌 사후 50년이 지난 1979년에 출판하였다. 둘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긴 했다. 그럼에도 둘의 서사를 애써 이어보면 자본주의 사회 내 문화적 불평등 과정과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다.
자본주의 영속성을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결부시킨 베버(Max Weber)는 소비에 합리성과 도덕성을 부여했다. 소비라는 경제적 행위를 합리적 계산 그리고 엄숙한 종교 윤리적 태도에 의한 결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베블렌은 베버와는 전혀 다르게 소비를 규정하였다. 유한계급의 물질 소비와 여가 소비가 합리적으로 이뤄짐에 대해 이견은 없었다. 다만 부자들의 합리적 소비는 비합리적이라 할만큼 과소비에 가까웠다. 낭비와 사치에 가까워 보여 비합리적 소비를 하는 듯했다. 베블렌은 그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유한계급의 소비가 합리적이라고 파악했다. 비합리적으로 보일 만큼의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부를 드러냈다. 과시적 소비는 지극히 계산적이었으며 합리적이었던 셈이다. 베버와 베블렌 둘 다 소비에 깔린 합리성을 말했지만 베버는 근검, 절약과 같은 종교적 합리성을 강조한 반면 베블렌은 사치라는 반어적 합리성을 설파하였다.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는 풍요로움을 즐기려는데 있지 않고 보여주기 위한 행위라고 베블렌은 운을 뗀다. 이는 경제적 자산을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계층적 우위를 돈의 두께가 아닌 예술작품의 과잉 구매, 고급한 레저 시간에의 과잉 투여 등을 통해 드러낸다. 문화적 자산을 위한 자신들의 노력을 곧 교양있음이나 세련됨으로 정식화하려 하였다.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가 사회적으로 고급하며 의미있는 일이라고 정통성을 부여하였다. 유한계급의 구매와 시간 보내기가 정통화되면 이후 하층계급은 그를 모방하려 한다. 유한계급 문화의 정통화 그리고 하층계급의 모방 탓에 과시적 소비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제도가 된다. 제도 경제학자의 범주에 이름을 올린 베블렌식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의 경제 활동인 소비나 가격 결정은 수요와 공급, 시장의 원칙이 아니라 제도(관습, 문화)에 의해 이뤄진다.
부르디외의 작업은 개인의 문화적 취향으로부터 시작한다. 취향은 각 개인의 육체에 각인된 것이긴 하지만 결코 개인적이지 않으며 사회적임을 강조한다. 취향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합성적 결합에 의해 정해진다. 취향은 특히 문화적 자본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 가정이나 계급 내에서 유통되는 언어, 태도, 매너, 예술작품, 독서대상, 학위 등의 다양한 형태에 맞추어 형성된다. 달리 말하면 경제적 자본이 문화적 자본으로 전환되고, 이어 문화적 자본이 취향을 형성하게 된다. 베블렌과 마찬가지로 부르디외도 취향은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특정 방향으로 정통화되거나 계층화됨을 강조한다. 특정 취향이 사회적으로 더 귀한 대접을 받고 다른 취향은 달리 다루어진다. 그런 식으로 취향의 계층화가 발생하고 이어 정통화되지 않거나 바닥에 있는 취향은 주변화된다. 당연하게도 계층화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늘어난다. 정통화되지 않은 취향에 머물 경우 사회적 푸대접 심지어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른바 모방하여 성취하려는 욕망과 상징적 폭력이 발생한다. 그 같은 폭력을 피하려 모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자연스러워 지면서 취향을 둘러싼 구조는 큰 도전을 받지 않고 재생산된다.
베블렌과 부르디외를 종합하면 1) 경제적 자본으로부터 문화적 자본으로의 전환이 발생하며 2) 취향은 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지표인양 존재하고 3) 특정 취향은 정통화되거나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 영역으로 설정되므로 4) 취향 간 차별화가 발생해 상징적 폭력이 발생하므로 모방하여 성취하려 욕망이 생긴다. 그 결과 5) 경제적 자본의 불균등으로 인해 발생한 문화적 불평등은 은닉되고, 구조화되고, 큰 저항없이 재생산된다는 서사가 만들어진다.
사회 구조 변동과 문화적 불평등
베블렌은 포디즘의 자본주의를 살았다(1857-1929). 그의 시대엔 대량생산에 이은 대량소비가 필요했고 광고라는 제도가 대중의 소비를 부추겼다. 광고를 싣기 위한 온갖 매체가 시장에 등장했으며 그를 통해 대중의 일상은 균질화되기 시작했다. 고임금 지불과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지면서 대량생산된 다양한 상품을 게걸스럽게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식민 경영을 기반으로 한 서구 시장의 확장, 커진 시장의 독점을 꾀할 수 있는 거대 자본의 등장 등으로 인해 이른바 유한계급이 등장했고, 그들은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루프에서 벗어난 문화적 소비를 형성하며 과시적으로 즐겼다. 노동과 거리가 멀고, 비일상적이며, 결코 대중적일 수 없고, 희소한 것의 범주를 만들어 냈고 그를 통해 자신들을 드러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전혀 다른 소비 범주를 창조하면서 과시 소비를 펴냈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였다. 이른바 고급문화(High-brow culture)를 창조하며 <수직적 차별성>을 구축하려 하였다.
부르디외(1930-2002)는 포스트 포디즘의 시작 지점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시대엔 글로벌화가 이뤄진 시기이며, 시장이 사회의 중심이 되고, 이미지가 소통을 주도하며,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해진 시기이기도 했다. 사회 내 소비 범주가 촘촘해지면서 전혀 다른 소비 범주는 희소하게 되었다. 유한계급은 같은 소비 범주 내에서 희소함을 창출하였다. 이른바 <수평적 차별성>을 택하였다. 즉 같은 유형의 소비를 차별하는 방식으로 취하였다. 예를 들면 오디오 감상이라는 취향 속에서도 명품 오디오 기기를 갖추는 소비 행위를 추구하였다. 여행이라는 여가 소비도 해외 여행, 고급 크루즈 여행 등으로 차별화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베블렌과 부르디외는 자신들이 활약한 시절의 계급 별 소비 분석을 통해 차별성과 불평등 구조를 파악해냈다. 살펴보았듯이 서로 다른 시절에는 다른 차별성과 불평등을 드러내는 유한계급의 방식이 존재했다. 포디즘에서 포스트 포디즘으로 옮겨가면서 문화적 불평등은 여전했지만 수직적 차별성에서 수평적 차별성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불평등의 지속, 불평등 양상의 변화를 목도할 수 있었다. 이 둘이 살았던 시대 이후 즉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에도 그 불평등은 연속될까? 만약 그러하다면 그 양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포디즘과 포스트 포디즘의 시대를 넘어선 시간에선 문화적 불평등이 어떤 존재일지 예상해보자.
베블렌과 부르디외의 시대를 지나 이른바 ‘통제 시대(society of control)’를 예고했던 들뢰즈(Gilles Deleuze)는 소비의 최우선 순위 형태로 개인화를 꼽았다. 대중화에서 부문(section)화를 거쳐 이제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개인 소비가 가능해지는 시기라는 말이다. 이른바 알고리즘의 성과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개인(individuals)을 시간과 공간별로 더 쪼개 내 극단적 가분체(dividuals)로 만들어 내는 시대다. 대중은 개인적으로 뱉어낸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받는 이른바 맞춤형 문화에 예속된다. 새로운 취향으로 나아가거나 이웃의 취향을 점검해볼 기회를 좀체 얻지 못한다.
자신의 취향을 더욱 굳게 만드는 데이터를 생산해내는 ‘노동하는 소비자’가 되고 만다. ‘노동하는 소비자’는 생비자(prosumer) 개념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개념이다. 유튜브 감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용자는 여가 시간을 즐기면서 자신의 데이터를 생산해 유튜브 회사로 보내는 ‘노동하는 소비자’가 된다. 대조적으로 유한계급은 하이텍 전유를 통해 구할 수 있는 희소 시공간, 대상을 구축한다. NFT 등과 같은 비물질 자산의 소유, 활용, 채굴, 투자 등이 그에 속한다. 빅데이터의 구매, 네트워크의 형성을 통해 그 같은 소비 행위를 더욱 희소한 행위로 챙겨낼 수도 있다. 이 같은 소비 행위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개인화된 이웃을 관찰, 감시, 통제하기도 한다. 이른바 비가시적인 <지배적 차별성>의 소비를 행한다. 이로써 문화적 불평등은 불평등의 수준을 넘어 인간 통제의 조건으로 이어진다.
진짜 문화적 불평등
문화적 불평등 구조는 그 양상만 달리할 뿐 굳건하며 또 앞으로 그럴 전망이다. 오히려 그를 붙들어 따질 만큼 가시적이지도 않아서 그를 해소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사회적 무의식에 해당하는 하이텍이 과시적 소비, 문화적 불평등에 착근되는 바람에 해결의 실마리 조차 찾기 힘들다. 비물질 재화 중심의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장밋빛 청사진, 담론마저 시민을 현혹하고 있으니 막상 문화적 불평등의 문제를 그 어느 때 보다 대하기가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불평등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불평등을 겪으나 마주하지 못한다. 이미 불평등한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불평등을 계속 들이민다. 그럼에도 개인은 자신의 불평등을 데이터화하며 여가를 보내고 불평등 강화에 일조한다. 불평등이 지배로 이어지는 이른바 진짜 문화 불평등의 시간을 맞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될 전망이다. 더 무서운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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