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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1호] 처음 하는 인간관계: ‘나’와 ‘나’ 본문
기자 이윤종
SNS 그리고 인정중독
아침에 일어나 SNS를 확인한다. 간밤에 행복했던 타인의 일상들이 SNS를 수놓고 있다. 모두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저마다의 행복을 내놓는다. 그럼 나는 행복해졌을까?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인정욕구를 뛰어넘는 ‘인정중독’의 상황이라 말하였다. 사람들은 자기 어필을 위해, 인정받고 싶어서, 남들보다 눈에 띄기 위해서 SNS에 자신을 과시하여 나타낸다. 물론, 적당한 인정욕구는 우리를 건강하게 할 수 있으나 과도한 인정욕구는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다. 오늘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다. 좋아요, 하트, 많은 조회수를 받으면 인정받는 느낌을 만들어 지나치게 기분을 up시킬 수 있으나 그러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지나치게 기분이 down될 수 있다. 게시물 아래 놓인 ‘엄지 버튼’의 방향이 내 기분을 결정한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수 없다. 내 기분이 좋기 위해 여행을 가더라도 그곳은 내 SNS 게시물을 위한 하나의 장소가 된다. 온전히 좋은 기분을 느끼기 어렵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봐도 멋지고 좋은 장소여야만 하게 된다. 핸드폰 너머의 좋은 경치를 즐길 수 없다. 타인의 눈치를 본다. 이는 필히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SNS, OTT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저마다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과의 관계를 상당히 의식하게 되었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나 자신과의 관계에 노력하고 있을까? 오늘 하루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 본 적이 있을까?
자기-대화의 부족
우리가 태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인간관계는 스스로와의 대화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물어가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은 삶에 매우 중요하다. 자기-대화(self-talk)에 관한 연구에서는 자신과의 대화가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정서적으로 불편감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조민주·정영숙, 2022). 하지만 우리는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미디어의 발달 때문인지, 삶의 각박함 때문인지, 불안한 나에 대한 회피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내가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다른 사람에게는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SNS와 유튜브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나타나는 콘텐츠를 바라보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끊임없이 접하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와의 소통방해: SNS
SNS를 과다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은 SNS 속의 세상을 현실 세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합의착각(false consensus)을 일으키기도 한다. 합의착각 효과는 자기 생각을 남들도 동의할 것이라는 비율을 과대하게 추정하는 인지적 편향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합의를 내 마음속으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나은영, 2012). 이는 특히, 타인의 존재를 명확히 알 수 없는 SNS와 같은 미디어에서 빈번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내가 유명인 누군가를 싫어하여 그 사람과 관련된 좋지 않은 영상만을 찾아서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싫어할 것이라 착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내 의견을 표현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일 수도 있으나 보통 부정적인 의견이고, 그것이 악플이 된다. 동시에,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만을 쫓아가며, 그 속에서 더 돋보이려고 더 죄악스러운 악플을 달기도 한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우리는 스스로와 대화할 시간을 잃고, 타인과의 의견교류를 통해서만 자신을 증명하곤 한다. 남을 깎아내리고, 평가절하하며 나를 치켜세운다. 정작 나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평가하지 못하면서…….
나와 나의 인간관계, 소통, 대화: 자존감 회복
나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떤 것이 중요할까? 그것은 ‘자존감 높이기’이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의 준말로,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및 자신의 가치에 대한 정서이며, 대체로 ‘자신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스스로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나타낸다(Rosenberg, 1965). 경계해야 할 것은 나르시시즘과 착각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오히려 나 자신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이며, 마치 자존감이 매우 높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나르시시즘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또는 이상적인 모습으로서의 ‘나’를 좋아하는 성향이라 보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즉, 왜곡된 모습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의 관심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되기를 바라며, 자신을 과대하게 포장한다. 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나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큼 다른 사람도 존중할 줄 안다.
그렇다면, 건강하게 온전히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먼저,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일단, SNS의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SNS에 올라온 타인의 행복한 모습들은 그저 하나의 순간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도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타인과의 비교를 줄여야 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SNS상에서 돈 많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나는 뭐 저런 사람은 아니지’하고 생각을 멈춰야 한다. 누군가는 당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부러워할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나만이 가진 장점을 찾거나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내가 더 잘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와 같은 행위가 말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어느 정도나 모르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여서 나와의 대화를 어떻게 시작할지조차 막막할 수 있다. 만약, 혼자서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나 사설 상담센터를 찾아 스스로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타인을 통해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필자가 상담을 받아본 경험을 공유하자면, 원래 스스로를 많이 압박하고, 비판하고, 쏘아 대면서 내가 나를 못살게 굴었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 목표한 계획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해하고, 못마땅해했었다. 그런 일화를 말하는 나에게 상담자는 ‘그러면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하였고, 그 질문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내가 나를 너무 돌아보지 않았구나, 나도 사람인데 내가 너무 기계적으로 나를 몰아붙였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그동안 고생했던 나를 가엾게 여기며 내가 나를 보호하고 자존감을 회복했었다. 당시에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다’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상담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나와 진심으로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가장 오래할 인간관계: 나와 나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라는 말은 때론 너무 쓸쓸해 보일 수 있지만 외로운 여정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누구보다 나 자신과 잘 지내야 한다. 나의 삶을 사는 것은 온전히 나이다. 나를 아껴주고 지켜주는 것도 나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인생에 큰 힘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우선 순위는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나를 칭찬하고 감싸주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나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또 지친 하루를 보냈다 하더라도 잠깐이나마 핸드폰을 내려놓고, 집에 가는 길에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참고문헌
나은영. (2012). SNS 중이용자와 경이용자의 현실인식 차이: 배양효과와 합의착각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6(3), 63-84.
조민주, & 정영숙. (2022). 자기-대화의 유형이 과제수행 및 수행 후 정서에 미치는 효과.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8(2), 83-106.
Rosenberg, M. J. (1965). When dissonance fails: On eliminating evaluation apprehension from attitude measure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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