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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8호] K리그의 봄

유튜버 뷰티풀풋볼

 

 “오늘 경기는 전석 매진으로 현장 구매가 불가능합니다” 바야흐로 K리그의 봄이 찾아왔다. 인터넷 사전예매로 표를 구하지 못한 축구 팬들은 아쉬움에 경기장 주변을 맴돌고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도착해도 주차장 자리가 빠듯하다. 응원하는 팀의 원정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많은 전세버스 행렬이 이어지고 구단 MD 샵에는 신상 유니폼과 굿즈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대기 줄이 생긴다. 축구 종가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아닌 현재 대한민국 K리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지난 2023시즌 K리그1의 평균 유료 관중 수는 10,733명을 기록했다. K리그1 누적 관객수는 244만 명이며 K리그1, 2 통합 300만 명의 유료 관중을 달성하며 1998년 안정환, 이동국, 고종수가 활약하던 인기(누적 211만 명)를 훌쩍 넘어섰다. 2024시즌이 3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도 연일 구름 관중이 경기장을 방문하고 있다. 텅 빈 경기장을 채우기 위해 구단에서 무료표를 나눠주고 지정좌석제가 아닌 자유좌석에 앉아 1명의 관람객이 다수의 자리를 점유하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출처 : 본인제공>

 

 한때 수많은 축구 팬들이 외면했었던 K리그에 어떻게 봄이 찾아왔을까? 우선 첫 번째로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한 K리그 선수들의 존재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2-0으로 꺾었던 ‘카잔의 기적’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극적인 16강 진출을 일궈낸 ‘얄리얀의 기적’ 그리고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경기 종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2024년 카타르 아시안컵은 수많은 팬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은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나 2018년 독일과의 맞대결 그리고 2024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선보였던 조현우와 2022년 가나를 상대로 교체 출전하여 통쾌한 다이빙 헤딩골과 외모로 월드컵 스타로 떠오른 조규성 선수가 대표적이다. 또한, 유럽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던 전·현직 국가대표 스타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다. 이청용, 기성용, 이승우 등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많은 축구 팬들의 새벽을 지새우게 만들었던 이런 선수들을 이제는 가까운 주말 K리그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다.

 

 두 번째는 K리그 발전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이다. 로켓 배송으로 유명한 쿠팡의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는 K리그의 온라인 중계권을 확보하여 운영 중이다. 단순 방송 송출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K리그 구단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해외 리그의 유명 축구팀을 한국에 초청하여 K리그 올스타팀과 경기를 기획했다. 쿠팡플레이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경기 하이라이트를 제공하며 쿠팡플레이 시청자를 위해 배성재, 한준희 등 축구 팬들에게 친숙한 중계진을 구성했다. 또한, 그 주의 가장 핫한 경기인 ‘쿠플픽 중계’는 이경규, 김흥국, 조나단 등 축구를 사랑하는 게스트를 초청하여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의 노력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 2020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스페인 라리가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여러 방면에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프로연맹 방송사업팀, K리그 중계방송 실무자가 현지 중계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중계방송 제작 및 송출 노하우를 K리그에 도입시켰고 시청자들의 만족도를 크게 끌어 올렸다. 과거와 달리 중계카메라를 다양화하고 설치 위치를 조정하는 노력을 통해 골 장면을 비롯한 생동감 넘치는 현장과 다양한 시점에서의 주요 장면을 전달하고 있다. 더불어 방송사마다 중구난방이던 스코어보드와 중계 영상의 색감, 중계 폰트를 일원화하고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을 도입하는 등 선진 리그 제도의 정착을 위해 힘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토리텔링이다. 많은 축구 팬들이 해외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히스토리 때문이다. 라이벌 더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팀의 반란, 스타 선수의 이적, 응원 문화 등 다양한 스토리가 모여 역사를 만들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 축구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K리그 역시 작년 기준으로 개막 40주년을 맞이했다.

 

 2023시즌 K리그에도 울산의 리그 2연패, 포항의 FA컵 우승, 수원삼성의 충격적인 강등과 같은 많은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2023시즌 K리그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키워드는 ‘광주FC’와 ‘이정효 감독’이 아닐까 싶다. 3번의 강등과 승격을 경험한 광주FC는 2023시즌 강등 1순위 후보로 거론되는 팀이었다. 시즌 개막에 앞서 진행된 미디어 데이에서도 광주FC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광주FC의 가능성을 믿었던 사람들은 팀을 2부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던 이정효 감독밖에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광주FC는 시민구단으로 재정과 지원의 한계가 명확했고 광주FC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을 이적시키며 구단을 운영해 왔다. 주축 선수들이 이탈하다 보니 조직력과 경쟁력이 떨어져 강등 당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특유의 간절함으로 금방 1부 리그의 문을 두드리는 팀 역시도 광주FC였다.

 

 광주의 사령탑 이정효 감독은 K리그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감독이다. 광주FC의 경기를 보다 보면 한껏 흥분한 상태로 전술을 지시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40년의 K리그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이런 유형의 감독은 흔치 않았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전술 운영, 독설을 서슴지 않는 언변으로 이정효 감독은 단숨에 K리그에서 가장 핫한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결과 지난 시즌 광주FC는 최종 성적 3위를 기록했으며 구단 최초로 아시아챔피언리그에 진출권을 획득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성과가 네임밸류가 거의 없는 선수들로 이룩한 성과라는 것이다. K리그 1부 팀들의 평균 연봉을 비교하면 광주FC의 선수단은 가장 최하위 수준이다. 유스팀인 금호고에서 육성한 선수, 다른 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 팀의 약점을 메꿔줄 우수한 외국인 용병들이 피치 위에서 조화롭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광주FC는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고 2023년 전 구단 중 유일하게 모든 팀을 상대로 승리한 팀으로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2024년 K리그에서 주목할 키워드와 스토리는 무엇이 있을까?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활약한 영국 국가대표 출신의 린가드의 서울 이적, 울산에서 라이벌인 전북으로 이적한 김태환 선수, 울산의 리그 3연패 도전, 광주FC의 아시아 무대 경쟁력, 선수에서 감독으로 포항에 돌아온 레전드 박태하 등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동안 많은 사람에게 외면받았던 K리그에 봄이 찾아왔다. 영화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천만영화라고 하면 궁금증에 극장을 찾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께서 설령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번 기회에 가까운 K리그 경기장에 방문을 적극 추천한다. 축구 규칙과 선수 이름을 몰라도 상관없다. K리그를 보러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방문한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서강대학교 독자분들과도 K리그에 찾아온 따뜻한 봄을 같이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