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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1호] 결혼의 시간(성) 본문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 노창석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가장 실감하게 되는 것은 여기저기서 시시때때로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10년 지기 친구(들)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간다간다 했더니 드디어 가는구나, 결혼식장 안에서 둘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들이 어딘가로 떠나가는 듯한 느낌. 둘이 기어코 어떤 문턱을 넘었구나 하는 느낌. 결혼이라는 시간의 테두리 안으로 통과해 들어가, ‘어른’이 되었다는.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다른 하객들, 다른 내 친구들은 둘의 결혼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우리는 각자 결혼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이 글을 통해 결혼을 감각하는 각기 다른 시간성이 젠더/섹슈얼리티에 따라 어떻게 연결되고 교차하는지 고찰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새로이 결혼이라는 시간성에 접속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결혼이 ‘어른’으로의 이행이라는 상상은 이성애 남성성과 관련이 깊다. 과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방송인 정준하가 프로그램 멤버들로부터 장가를 가지 못해 놀림받았던 장면을 상기해보면, ‘결혼’은 어떤 능력적인 개념에 가까웠다. 방송인 박명수가 익살스럽게 ‘상투도 못튼 놈이’라고 정준하를 힐난하는 장면의 이면에는 결혼이 ‘어른’이라는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하나의 시험대라는, ‘진정한’ 남자임을 증명하는 자리라는 관념이 존재한다. <무한도전>과 나머지 멤버들은 진심으로 정준하가 결혼하기를 바랐고, 심지어 ‘정준하가 장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며 시민에게까지 그 프로젝트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결혼은 남성동성사회에서 결혼 못한 남성이 자신들과 같은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련의 사회적∙집단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OOO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는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나 방송인 기안84 등을 통해서도 여전히 나타나며, 이성애자 남성의 결혼이 마치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숙원이라는 전제를 만들어낸다. 한국 사회가 한 명의 이성애자 남성이 ‘진정한’ 남자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하는 것, 다시 말해 가족을 꾸리는 것은 근대 남성성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이성애 남성, 여성이 서로를 주체적으로 선택해 영구적으로 결합하는 낭만적 사랑의 이상은, 경제적이고 봉건적인 가문 간의 결합으로 간주되던 결혼을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으로 ‘해방’시켰다. 낭만적 사랑은 발흥하고 있던 산업자본주의의 역동과 결합한다. 남성을 임금을 받는 생산 노동자로, 여성을 돌봄, 출산, 양육을 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자로 분업하여 가족을 하나의 생산성 단위로 변환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60~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산업화와 낭만적 사랑 담론의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보편적인 핵가족의 양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가족계획사업은 식민지 이후 ‘폐허’가 된 조선을 서구 ‘선진국’과 같이 근대화시키는 국가적 동원 체제였다. 산업노동에 걸맞는 노동자 인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농촌 인구를 ‘미개한’ 정신과 신체를 가진 것으로 프레임화하고, 출산조절을 근대화된 시민으로서의 미덕으로 표상함으로써 도시에 살며 두 명의 자녀를 키우는 이성애 부부의 모델을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산업 역군으로 호명되었던 한국 근현대 남성들에게 결혼이란 식민지로부터 생겨난 가난과 지체를 극복할 수 있는, 개발주의의 열망과 결합된, 이상적인 남성상 혹은 어엿한 국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이었다.
그러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알려진 것처럼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가 아니었다. 압축적 산업화 시기 고용된 남성 중 약 40%만이 안정적인 형태로 고용을 유지했고 나머지 남성들은 이동성이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최선영 장경섭, 2012). 많은 여성들과 자녀들이 생계유지에 충분치 않은 ‘남편/아버지’의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추가적인, 불안정한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제조업이 쇠퇴하고 후기 산업자본주의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IMF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환상은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여전히 근대적 남성성으로서의 생계 부양자 모델, ‘가장이 가족을 책임진다’는 이데올로기는 잔여물로 남아 현 시대의 결혼의 시간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산업화 시기 한국의 여성들에게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졌다. 성별분업제도는 여성이 ‘공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만들었고, 여성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은 남편을 얻어 남편이 벌어오는 임금을 가족의 이름으로 활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로 인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붕괴, 국가/가족제도의 남성중심성을 고발하고 여성인권 증진을 도모한 사회운동, 사회적 안전망이 해체되고, 불안정한 고용/노동 구조로 재편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여성은 역설적으로 ‘야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어머니/아내/누나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여성, 자기를 계발함으로써 새로운 생산성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여성에게 결혼은 자신의 오롯한 선택이 된다. 동시에 여성에게 결혼은 ‘선택’으로 위장된 강요이기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불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여전히 돌봄, 육아, 섹스를 수행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는 굳건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결혼은 가부장제의 압력과 신자유주의적 자기 개발과의 협상이 발생하는 젠더 정치의 장으로 부상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여성의 결혼은 고용불안, 경력단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계급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성의 고용불안, 경력단절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여성이 결혼, 출산, 양육의 시간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의 직업적 열망을 포기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은 구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즉 결혼이라는 시간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커리어를 개발하는 시간과 반대로 흐른다. 몇몇 여성들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비연애, 비혼, 비출산 여성의 증가는 돌봄의 책임이 여전히 여성에게 지워진 가부장적 근대적 가족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불안정하고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여성혐오로 구조지어진 이성애 친밀성을 차단하고, 새로운 친밀성의 양식을 탐색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기혼 여성들 또한 결혼제도 내에서 가부장적 관습과 협상하고 저항하며 각자만의 결혼생활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한편으로 결혼은 주어지지 않은 권리를 쟁취해내고자 하는 투쟁의 자리이기도 하다. 2024년 7월 18일 대법원은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다. 동성혼 법제화 실현을 위한 시민단체 <모두의 결혼>은 대법원의 이번 판시가 “연금, 주택, 의료 등 생활의 전반에서 동성 동반자가 겪는 차별을 해소할 국가의 책무를 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혼의 금지는 단순한 차별을 넘어 이성애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젠더/섹슈얼리티를 제한함으로써 ‘정상가족’이라는 경제적, 사회적, 이념적 단위를 온존하려는 통치성이다. 동성혼의 법제화는 동성애 커플의 기쁨과 안녕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퀴어의 미래를 철폐하는 이성애규범적 국가의 시간을 다시 열어젖히는 사회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동성혼이 단순한 의제는 아니다. 서구 퀴어 이론에서 동성혼이 이성애규범으로의 편입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착한 게이 시민’을 주조해내는 호모규범성(homonormativity)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국내에도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에서 이성애 가족 친밀성을 해체하는 실천으로서 동성애 친밀성을 바라보는 연구가 있다. 하지만 서구 퀴어 이론의 맥락을 그대로 한국에서의 퀴어, 동성애, 동성혼 담론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 역시 있다. 한국의 퀴어 이론/운동은 서구의 이론과 담론을 흡수하면서도 독자적인 의제와 실천들을 만들어나갔고, 조혜영(2010)은 한국의 퀴어들이 “시간차가 큰 다중적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한다. 조소연(2023)은 ‘다중적 시간성’이라는 논의를 이어받아 서구에서의 동성혼이 놓여있는 시간과 한국에서 동성혼이 놓여있는 시간이 다중적으로 놓여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막 동성혼 법제화는 실현 가능한 영역으로 보이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퀴어 정치 내에서의 복잡한 역동과 긴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여러 목소리가 서로 다른 시간성의 스케일 위에 놓여있고, 그 다른 시간성들이 어떻게 교차되고 공명하는지 성실히 살펴야한다는 것이다.
이 글이 거칠고 서투르게 돌아본 ‘결혼의 시간성’은 젠더/섹슈얼리티에 따라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글의 순서 마냥 이성애 남자, 이성애 여자, 동성애자라는 고정적인 분류가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여자’, ‘동성애자’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정체성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수행하고 있고, 믿고 있고, 그럼으로 인해 구속력을 가지게 되는 이 정체성들은 꾸준히 고유한 정치적 의제에 참여하고 있다. 이 의제들에서 우리가 질문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왜 가족은 남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지? 왜 여자는 처음부터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정해놓았지? 왜 동성애자는 결혼을 하지 못하지? 각 질문이 품고 있는 과거, 그리고 현재, 펼쳐보이는 미래는 모두 조금씩 겹쳐있다. 때에 따라서는 대립하고, 때에 따라서는 공모한다.
결혼은 사회적 제도이나, 동시에 친밀성의 한 양식이기도 하다. 국가에서 가장 공인된, 공식적인 친밀성의 이름이기도 한 결혼은 남성성을 증명하는 프로젝트가 되기도, 혁파해야할 구시대적 가부장제의 관습으로도,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권리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결혼 외에 대안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친밀성의 양식이 더 많이 있기를 소망하기도 하지만, 결혼 자체가 ‘퀴어’해지고, 이상해지고, 묘해지기를 동시에 바란다. 이성애 커플이든, 동성애 커플이든, 폴리아모리든,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이든, 성애를 전제하지 않은 형태로든, 불안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누구와 함께, 또 어떻게 친밀함을 나누며 살아갈까? 라는 폭 넓은 질문의 자장 안에서 사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친구의 결혼식에서 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때 느낀 감정은 이 둘이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아득함이었다. 그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정상가족의 시나리오나, 혹은 어떤 목적에 맞춰진 ‘변혁’의 유토피아는 아닐 것이다. 내가 모르는 둘만의 새로운 자리가 놓여져 있다.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역사는 그들만의 것도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나도, 다른 친구들도, 또 다른 존재들이 관여되어 있다. 나는 이 혼종적 시간을 결혼의 시간성이라 부르고 싶다. 반드시 장밋빛도, 그렇다고 잿빛도 아닌 애매한 시간의 접경지대에 우리는 서 있다. 결혼에 대해 새로이 질문하고, 새로운 친밀성의 양식을 상상하기 위해서 더더욱 우리는 결혼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야 한다. 이 기묘한 시간 앞에 선 모두가 그러한 수고를 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한 번 더 축하를 보낸다. 너희의 새로운 시간이 또 다른 시간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그 시간에서 함께 즐겁게 떠들 수 있길 바라며.
참고문헌
강진웅. 2023. “한국 사회의 낭만적 사랑 담론과 그 전개”. 『문화와 정치』 10(3): 33-68.
김민지. 2021. “청년세대 고학력 비혼 1인가구 여성의 거주 공간의 경험을 통해 본 가족, 성 이데올로기의 저항과 수용, 변형”. 『문화와 사회』 29(3): 117-173.
김순남. 2013. “이성애 결혼/가족 규범을 해체/(재)구성하는 동성애 친밀성”. 『한국여성학』 29(1): 85-125.
김순남. 2016. “이성애 비혼여성으로 살아가기”. 『한국여성학』 32(1): 181-217.
문은미. 2016. “여성의 경력단절과 고용불안”. 『여/성이론』 35: 95-118.
신경아. 2014. “신자유주의시대 남성 생계부양자의식의 균열과 젠더관계의 변화”. 『한국여성학』 30(4): 153-187.
장경섭. 2018. “가족자유주의와 한국사회: 사회재생산 위기의 미시정치경제적 해석”. 『사회와이론』 32: 189-218.
조소연. 2023.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다중적 시간성 : ‘동성결혼’을 중심으로”.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조은주. 2018. 『가족과 통치』. 창비.
조혜영. 2010. “트랜스내셔널 퀴어 정체성의 다중적 시간과 (비)가시성”. 『여/성이론』 22: 203-219.
최태섭. 2018. 『한국, 남자』. 은행나무.
유튜브와 인터넷 기사
오분순삭. 2020. 8. 18. “🎉경 존버당 축🎉 정준하 결혼 프로젝트? 사실은 멤버들의 씹뜯맛즐 티키타카! "짱가 가라~"🤵| 무한도전⏱오분순삭” https://www.youtube.com/watch?v=AjzzKfVg260&t=3s
M 드로메다 스튜디오. 2022. 6. 8. “도대체 언제까지 혼자 살아야 돼..” https://www.youtube.com/watch?v=r-dNPxetz88&t=203s
김소영 기자. 2024. ““사랑이 이겼다”… 대법원,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비마이너. 2024.7.19.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92. (최종접속일: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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