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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반려동물 효과; 인간-반려동물의 정서적 유대감과 삶의 질 본문
원광대학교 뇌졸중한의중점연구센터 연구교수 김세영
언젠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의 야트막한 산을 산책 하고 내려오는 어르신 부부를 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먼저 내려와 서 뒤를 돌아보며 할머니를 기다리고 계셨고, 곧 할머니가 그리고 이 어서 갈색 푸들 강아지가 내려왔다. 그런데 산책로에서 내려오자마자 강아지는 더 이상 걷기를 거부하고 할머니를 향해서 앞발을 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익숙하게 강아지를 번쩍 안아서 엉덩이를 토닥이며 집으로 가셨다. 물어보지 않아도 두 분에게 이 개는 가족일 것이다.
인류 주변을 배회하는 야생동물을 길들여 함께 살기 시작했던 흔 적은 연구자에 따라 12,000년 전부터 30,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 다.1) 이스라엘 북부 지역의 12,000년 된 주거지에서 사람의 품에 안긴 개의 뼈가 나왔으며, 이보다 4,000년 앞선 러시아와 독일의 고대 야 영지에서 개의 두개골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어느 시기에 어느 곳에서 인류와 개가 처음으로 친구가 되었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고고학적 자료 외에도 여러 기록에 의하면 인류는 꽤 오랫동안 어떤 종의 동물 을 실용적이지 않은 목적으로 가까운 곳에 두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 로마시대 사람들은 기르던 동물이 죽었을 때 매장을 하고 묘비를 남겼는데 이 묘비에 의하면 이 시기의 사람들은 곤충부터 포 유동물까지 다양한 종을 길렀다. 오래전 로마 사람의 메뚜기나 새, 말 등이 현대적인 의미의 반려동물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주인이 무엇보 다 죽은 동물과의 상호의존적인 애정과 일상적인 기쁨을 상실했기 때 문에 슬퍼한 점으로 보아 동물과 주인의 애착은 요즘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2) 고대 사회에서도 비실용적인 이유로 동물을 기르는 취향은 널리 퍼져있었지만, 만약 동물을 자녀나 배우자의 대체물로 기르는 사람이 있다면 비난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받는 흔한 오해 중의 하나는 다른 종에게 쏟는 애정이 지나치다는 것인데 때로 과도해 보이는 애정이 무 모한 낭비만은 아니다. 반려동물은 경제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서적 인 이유로 기르는 동물이라고 정의하고,3) 2000년대 초반 인간과 반려 동물의 상호작용이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특성을 반려동물효과(pet effect)라고 간단하게 부르기 시작하면서 신체적, 사회심리적 건강에 반려동물이 어떻게 기여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4) 예를 들면 심장발작 을 일으킨 환자를 추적 조사했을 때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28%)이 기르지 않는 사람(6%)보다 일 년 후 생존율이 더 높았고5) 고혈압이 있 는 증권중개인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절반은 반려동물을 기르고 절반 은 기르지 않도록 하였는데 여섯 달이 지난 후 스트레스 상황에서 반 려동물군에 배정된 사람들의 혈압이 더 낮게 유지되었다.6) 그리고 반 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에게 강한 애착을 갖고 있으며 정서적인 유대관계에 만족하였고 심리적으로도 더 건강하였다.7)
반려동물을 기르 면서 좋은 경험을 했던 사람이라면 좀 두루뭉수리 하게 들리는 반려동물효과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지 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제를 통해서 사람들 이 더 건강하거나 잘 적응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반려동물이 사람들에게 주는 효과를 인과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무선 배정과 같이 엄격한 연구방법을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주로 이미 반려 동물을 기르는 사람과 기르지 않는 사람을 비교하는 방법이 많이 사 용된다. 게다가 연구 결과도 일관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행된 많은 연구는 반려동물을 소유하는 것 이 주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단순한 가설을 좀 더 그럴듯 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조건을 탐색해 보았다.
먼저 반려동물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를 지각하는 방법이다. 인간 과 동물의 상호작용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관점으로 치우친 불균형 한 특성이 있는데 이런 특성이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위로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즉 반려동물은 사람을 비판하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를 보 인다는 점에서 사람과의 상호작용보다 더 안정감을 준다. 예를 들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거나 내향적인 사람들이 대중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처럼 자신의 수행이 평가받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친한 친구보다 반려동물과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꼈고,8) 반려견이 연인보다 더 일 관성 있게 애정을 주는 대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9)
그리고 반려동물이 실용성보다는 정서적인 이유로 기르는 친밀한 존재라는 점을 생각하면 반려동물과의 애착이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 도록 도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이 사람들의 우 울감과 외로움을 줄여주었는데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다면 도움이 되 었다. 외로움은 사회적 관계가 충분하지 않거나 혹은 관계의 질이 불 만족스럽다면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는데 현실에서 이런 환경을 해결 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 반려동물에 대해서 강 한 애착을 형성할 수 있으며 노인, 일인가구, 혹은 스트레스 상황에 있 는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애착이 외로움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반려동물과 강한 애착 을 해석할 때는 주의할 부분이 있다. 동물을 정서적으로 좋아하고 친 밀하게 느끼는 애착이 오히려 소극적인 사회활동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좀 더 일반적으로는 반려동물과 애착이 주는 정 서적 지지는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지지로 인한 만족감에 추가되는 보충적인 의미이다. 즉 부족한 인간관계를 반려동물이 채워주는 풍선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가구 중 15%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출처: pixabay] 효과(hydraulic hypothesis)로 보는 것보다 반려동물의 지지는 인간 으로 구성된 사회적 지지망에서 누리는 친밀감에 더해지는 보충효과 (complement hypothesis)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일과(routine)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동기를 만족시킬 수 있다.10)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존 을 해결한 다음에는 친밀감, 유능감, 자율성을 경험할 수 있는 쪽으로 행동한다.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보호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반려동물 은 인간의 사회적 동기를 충족시킬 기회를 줄 수 있다. 즉, 반려동물 과 상호작용은 어떤 대상을 자발적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기회가 되 며 이 과정에서 자신을 의미있는 존재로 지각한다면 보호자로서 행 복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노년기에 접어들어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제한된 미래 시간 조망(future time perspective)을 갖게 되었을 때 반 려동물은 보호자에게 남은 시간이 촉박함을 깨닫게 하지만 한편으로 는 미래의 기회보다 현재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 게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긴 시간 동안 반려견을 키워온 노인은 산책이나 운동과 같은 일상적인 돌봄이 어려워지면 시간이 많지 않 다는 인식을 강하게 하지만 오래도록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상 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남아있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11)
요컨대, 반려동물이 인간의 심리적 건강에 어떤 기여를 한다면 부정 정서를 줄여주는 것보다 만족감, 행복감과 같은 긍정 정서를 더 자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12) 정신건강은 심리적 불편과 주관적 안 녕이 공존하는 개념이다. 심리적 불편감이 없는 상태가 곧 주관적 안 녕감이 높거나 정신건강이 양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은 외로 움이나 우울감이 있어도 동시에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만족감이나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13)
참고문헌
1) Grimm, D. (2015). Dawn of the dog. Science, 348(6232), pp.274-279.
2) Bodson, L. (2000). Motivations for pet-keeping in ancient Greece and Rome: a preliminary survey. In Podberscek, A.L., Paul, E.S., & Serpell, J. A.(Eds.), (2000). Companion animals and us (pp 27-41). Cambridge University Press.
3) Serpell, J., & Paul, E. (1994). Pets and the development of positive attitudes to animals. In Animals and Human society. Changing Perspectives, eds. A. Manning & J. Serpell, pp.127-44.
4) Allen, K. (2003) Are pets a healthy pleasure? The influence of pets on blood pressure.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2, 236-239.
5) Friedmann, E., Katcher, A., Lynch, J., & Thomas, S. (1980). Animal companions and one-year survival of patients after discharge from a coronary care unit. Public Health Reports, 95, 307?312.
6) Allen, K., Shykoff, B.E., & Izzo, J.L. (2001). Pet ownership, but not ACE inhibitor therapy, blunts home blood pressure responses to mental stress. Hypertension, 38, 815?820.
7) Hui Gan, G. Z., Hill, A. M., Yeung, P., Keesing, S., & Netto, J. A. (2020). Pet ownership and its influence on mental health in older adults. Aging and Mental Health, 24(10), 1605?1612.
8) Zilcha-Mano, S., Mikulincer, M., & Shaver, P. (2012). Pets as safe havens and secure bases; The moderating role of pet attachment orientations.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46, 571-580.
9) Beck, L. B., & Madresh, E. (2008). Romantic partners and four-legged friends; An extension of attachment theory to relationship with pets, Anthrozoos, 21, 43-56.
10) Kanat-Maymoon, Y., Antebia, A., & Zilcha-Mano, S. (2016). Basic psychological need fulfillment in human-pet relationships and well-being.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 92, 69-73.
11) Ikeuchi, T., Taniguchi, Y., Abe, T., Yokoyama, Y., Seino, S., Narita, M., ... & Fujiwara, Y. (2022). Pet ownership and the future time perspective of older adults. GeroPsych: The Journal of Gerontopsychology and Geriatric Psychiatry, 35(4), 226.
12) 김세영, 박형인(2017). 반려동물효과; 반려동물 소유와 심리적 건강 간 관계의 메타분석 연구. 사회과학연구, 28(1), 101-115.
13) Keyes, C.(2005). Mental illness and/or mental health? investigating axioms of the complete state of model of health. Journal of Consulting and Clinical Psychology, 73(3), 539-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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