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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1호] 죽은 시인의 사회 본문
교사 A
죽은 시인의 사회, 1989년 개봉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교육 활동을 주 소재로 하고 있으며 권위주의적인 교육 현실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 과거와 달리 현재 대한민국 학교에서 권위주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오히려 교권 침해에 대한 키워드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현실이다. 불과 10여 년 만에 학교의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학교 문화가 크게 변화했다. 출산율 저하로 학생은 줄어들고 있지만, 학교에서 집행해야 하는 사업과 업무는 증가하고 있다. 수업을 위한 교과 연구보다 주어진 업무를 쳐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또한, 학교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고 개인의 특성을 중요시하는 사회 명목론적 관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학교에서는 필연적으로 학생의 일탈 행동을 마주하고 재발 방지 및 인성 함양을 위해 학생을 교육한다. 과거에는 체벌 위주의 지도가 이루어졌으나 현재 학교에서는 상·벌점제에 의한 징계 또는 구두 경고로 지도가 이루어진다. 필자는 체벌이 이루어져야만 일탈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교사의 역량에 따라 생활지도의 방법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요즘의 학생과 학부모는 일반적인 생활지도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지도를 거부하거나 학교로 민원 전화가 걸려 온다. 학교생활에 조금이라도 페널티를 주는 상황이라면 특히나 더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근에도 학부모의 탄원서를 전달받았다. 자녀가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선도위원회 개최를 취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본인의 언행이 타인에게 준 피해는 생각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돌아오는 페널티를 피해 가려는 모습에서 적잖은 회의감을 느꼈다.
두 번째로 수업 문화가 변화했다. 교육과정은 크게 표면적 교육과정과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표면적 교육과정은 흔히 생각하는 주입식 수업 방법으로 정해놓은 구성에 따라서 진행되는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반면 잠재적 교육과정은 공식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가치관이나 도덕관 확립의 기능을 하는 교육과정으로 은연적으로 학생이 학습하게 되는 경험을 의미한다. 수업 시간에 줄어들고 들려주는 경험과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입시 제도가 과열되면서 시험만능주의가 만연하고 많은 학부모와 학생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학교가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도하더라도 모든 학생이 기대되는 학습 효과를 나타낼 수는 없다. 따라서 학생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봉사 정신, 협동심, 예의와 같은 인성적 측면을 지도하기 위해 잠재적 교육과정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의 성과 지표 중 하나인 대학 진학률이나 취업률 목표 달성에 집중하는 현실 속에서 수업 중 잠재적 교육과정을 위한 교사의 교육적 활동은 불필요한 행동으로 인식된다. 그렇게 성장기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인성교육의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른 문제점은 고스란히 학교와 사회에 표출되고 있다.
학교 문화와 수업 문화가 달라지면서 교사 문화도 변화했다. 학생 지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민원이 받는다. 수업 도중에 삶의 지혜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중요치 않게 여겨진다.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교과 연구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 문화는 수동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학생과 부딪혀 가면서 진심으로 학생의 변화를 위해 지도하지 않고 몸을 사리게 된다. 학생의 변화는 이끌어 낼 수 없지만 불필요한 민원을 받지 않아서 편하다. 학생에게 개인적인 삶의 경험을 전달하지도 않게 된다. 학부모로부터 ‘우리 아이가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는데 맞느냐’는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되고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다.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 쏟아지는 각종 사업과 업무를 잘 쳐내는 것이 우수한 교사의 역량으로 인정받아 실적이 되고 상을 받는다.
교직에 들어오고 이상과 다른 현실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아직은 악성 민원에 시달려보지 않아서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가기 싫은 날도 분명 있지만 매일 아침 교생실습 때 착용했던 명찰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출근한다. 정말로 선생이 되고 싶었던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싶어서 말이다.
‘이상적인 선생님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바람직한 교육인가?’. 모두가 생각하는 답변은 다르겠지만, 내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와 때로는 단호하게 얘기해줬던 쓴소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도움이 되었다는 졸업생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학교 문화가 더는 경직되지 않고 선생과 학생의 권리가 진정으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먼 훗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선생’과 ‘학생’이 아닌 진정한 ‘스승’과 ‘제자’로 기억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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