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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한국 사회의 문제적 사회구조를 돌아보다 본문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활동가 류현아
지금 당신은 세월호참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10년 전, 많은 국민은 304명의 희생을 애도하며 세월호참사를 “국가가 구하지 않은 사건”이라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 약속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국가에 의한 공식적인 진상규명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를 끝으로 멈췄고, 해경지휘부의 형사재판도 무죄로 종결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세월호참사를 깊이 이해하고 분석할 기회도 놓쳐버렸다. 더구나 세월호참사가 남긴 “더 나은 국가와 사회를 만들겠다”는 숙제는 여전히 풀기 어렵다. 그럼에도, 세월호참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내게 있어 세월호참사는 한국 사회구조를 2014년 4월 16일이라는 시간으로 잘라 그 단면을 세상에 드러낸 사건이다. 그 폐부를 들여다보며 안전사회로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자.
참사의 단면에서 무엇을 들여다보았는가
세월호참사 당일을 상세히 정리한 책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작가단은 세월호의 출항 전 상황을 “승객의 생명을 건 모래뺏기 놀이”에 비유한다. 선사와 공무원은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워 규제를 무력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참사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선박선령 제한완화, 인천항만청의 비리청탁, 부실한 한국선급의 경사시험, 해경 접대의 장으로 전락한 운항심사, 선사의 불법 증개축과 과적 등 수많은 관행과 불법이 겹친 결과 세월호는 언제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배가 되었다.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균형을 잃고 기울었다.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반복할 뿐 승객의 안전 대피를 위한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장은 가장 먼저 탈출해 해경 함정의 첫 구조자가 되었다.
해경이 구조를 방기하게 된 주요 원인은 판단 유예와 책임회피였다. 퇴선을 결정해야 할 순간, “선장이 판단하라”는 말로 책임을 미뤘다. 그에 앞서 판단할 자는 누구였는지 해경조차 알지 못했다. 해경의 어느 구조본부도 구조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구조본부 가동시각까지 조작했다. 심지어 가장 먼저 선장을 찾고 역할을 하도록 해야할 순간에, 선원의 도주를 도왔다. 해경 조직이야말로 무능력한 사공이 많은 배였다.
당시 해양 관제기관 소속 관제사는 퇴선지시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리기관의 지시에 따라 퇴선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생기면 그 때 책임은 누가 지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승객들의 생명 앞에서 책임의 무게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해경의 관료주의적 조직문화 안에서 분산된 책임은 서로에게 떠넘겨졌고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보다 절차와 수단이 우선되었다. 그들은 비극의 결과를 예상했지만 ‘조직이 알아서 하겠지’ 식의 심리가 그들을 움직이지 않게 했다.
참사 이후, 정부는 입법·행정·사법·문화·교육·언론 등 가능한 모든 자원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국가책임으로의 비화를 막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필두로 여당·해양수산부·인사혁신처·기획재정부·정보기관 등을 활용해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을 방해하고 와해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언론외압, 수사외압,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교수·교직원 블랙리스트 작성 등 국가를 사조직처럼 이용했다. 특히 피해가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보수단체를 부당하게 지원하고 혐오표현을 널리 퍼뜨린 것은 지금까지 피해가족들을 괴롭힌다. 이때 만들어진 ‘세금도둑’, ‘시체팔이’와 같은 혐오 표현은 국가가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자원 분배 책임을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적 자원 분배는 본질적으로 국가의 역할이며,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정치의 책임이다.
문제도 책임에 있고 해결도 책임에 있다
세월호참사는 한국 사회 곳곳에 자리한 책임 회피의 문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안전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재난참사 피해자는 책임자 처벌을 통한 사회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반복되는 재난참사에서도 책임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있어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데엔 한계가 있다. 국가가 책임지는 태도를 지녔다는 것을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나를 포함한 구성원 모두 책임감 있는 선택을 통해 안전사회로 가는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해경과 선원 모두가 하나같이 판단을 유예하고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은 그들의 조직문화가 폐쇄적이고 구조적으로 굳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법원이 짚어낼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악의가 없었다는 것 또한 이를 반증한다. 당시 선원과 해경의 대응이나 판결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기록단이 짚는 것처럼,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도 누구나 멈출 수 있었고, 할 일을 해야 했고, 용기 내어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커다란 부조리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기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고 바꿔낼 용기 모두 인간적인 특성이라는 것이다. 관료주의나 능력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현재의 체계는 이러한 인간의 다면적 특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그런 지점을 지적하며 나아가야 한다.
기존 진상규명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은 일’을 도식적으로 분석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한계를 만난다. 그 ‘왜’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했으며, 또 앞으로는 어떻게 올바른 선택을 하게 만들 것인지 상상해야 한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하지 않았는지 찾는 것을 넘어, 왜 선내진입하지 않았는지, 왜 즉각 보고하지 않았는지, 왜 퇴선을 명령하지 않았는지, 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불법사찰을 했는지 이유를 물어야 한다. 인간적인 질문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재난 상황에 놓인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심리적·윤리적 대안을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타당하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책임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악의가 없어도 폐쇄적이고 무책임한 조직문화를 만든 책임, 이로 인해 발생한 희생들에 대해 충분히 성찰할 책임이야말로 그들이 져야할 책임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을 책임지는 사람일수록, 선출직이나 임명직일수록, 그 책임은 더 무겁게 다루어져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상규명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상상은 안전사회를 구성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이어진다. 사회적으로는 개선된 제도나 정책이 될 것이며 개인이나 공동체에서는 더 좋은 선택의 가능성들을 이야기 나눠보는 시도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약속이나 원칙을 정하는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직접 안전을 만들어보는 감각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되새기지 않으면, 그 약속은 무의미하다. 수많은 매뉴얼과 법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지켜야 할 속박이 될 뿐이다. 정부가 제대로 된 애도와 성찰 없이 형식적으로 치루는 ‘국민안전의 날 행사’가 그 예다. 반면, 노란 리본을 지니고, 주기를 맞아 기억식에 참여하고, 관련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약속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야 말로 적극적인 기억하기일 것이다.
글을 마치며
리베카 솔닛은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 상황 속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재난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만드는 파괴적이고 흉폭한 재난 이미지와 달리, 재난 이후 인간은 서로를 돌보고 평등하게 기회를 나누며 기존의 사회적·정치적 억압구조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이타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고 분석한다.
세월호참사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재난 이후에 우리는 새로운 희망이 싹튼 것을 안다. 적어도 어떻게 재난참사를 기억하고 해석하고 교훈을 남겨야 하는지 우리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책임묻기와 진상규명에서, 그리고 차후 벌어질지도 모르는 재난참사의 순간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그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 그것이 세월호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푸는 길일 것이다.
참고자료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2024).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진실의힘.
사라 아메드. (2023). 감정의 문화정치. 오월의봄.
이문재. (2014).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리베카 솔닛. (2012). 이 폐허를 응시하라. 펜타그램.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김혜영. (2024).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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